칼 럼인류의 유언과 신순희인간이 만든 물질 중에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물체는 보이저 1호에 이은 보이저 2호다. 1977년 8월 20일 쏘아 올린 <여행자>라는 뜻의 보이저 2호는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의 성간(聖間-별과 별 사이)을 지나고 있는데 42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의 NASA에 교신을 보내오고 있다. 그렇지만 우주 자체가 공기 저항이 전혀 없는 무중력 상태이기 때문에 관성의 법칙에 따라 우주 공간을 무한하게 날아간다.
초속 17Km로 달리는 보이저 2호는 약 4만 270년 후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근처로 지나간다. 별과 별 사이는 무진장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으로 지구는 약 50억년 후에 사라진다고 한다. 태양이 거대한 폭발을 하면서 태양계에 속하는 모든 별은 태양과 함께 먼지로 돌아간다. 수소, 질소와 같은 이 먼지의 원소가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는 원소 118가지의 성분구성과 똑 같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된 지 100년도 넘었다. 즉, 우리는 우주의 먼지로부터 출발했고 다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지구는 50억년 후에 사라지지만 그 전에 기후 등 다른 요인으로 지구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핵무기도 그 중에 하나다. 보이저 2호가 발사될 무렵 냉전시대에 지구에는 6만개의 핵무기가 있었다. 6만개의 핵무기가 터지면 지구 역시 사라진다는 데에 착안하여 미국의 NASA는 만약에 지구와 비슷한 지능을 갖추고 있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우주의 한 행성인 지구에 생명체가 살았다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지구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만들어 보이저 2호에 실어 보냈다. 지구의 유언인 셈이다. 혹시 지구가 사라지기 전에 다른 행성의 외계인과 만나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모색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낮다. 외계인이 보이저 2호가 보낸 메시지를 찾을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지만 그 때는 벌써 지구는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의 모습을 담은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지구와 인류가 없어지면 남는 것은 오로지 이 메시지 뿐이다. <골든 디스크>가 바로 이것이다.
동(銅)판에다 금으로 입힌 이 레코드 판의 수명은 약 10억년이라고 한다. 10억년 안에 외계인이 이 골든디스크를 발견하지 못하면 지구의 유언마저도 없어진다. 이 골든디스크에는 레코드판을 사용하는 방법에 이어 인류가 알아낸 지식과 사진, 소리, 음악 등을 담았다. 먼먼 훗날, 지능이 뛰어난 우주 외계인이 이 레코드를 발견하게 되면 우주의 역사에서, 이 작업을 주도했던 <코스모스>, <창백한 푸른 점>의 저자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주의 먼지에서 살았던 지구인을 기억해 달라는 일종의 인류의 유언인 셈이다. 메시지 첫 구절을 보면 우주에서 본 우리 지구인의 위치와 우주에서 과연 ‘나’는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이 빛나는 점(지구)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한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확신에 찬 수천가지의 종교, 이데올르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인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던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다음 구절은 더 적나라하고 사실적이다. 인류가 수만년 동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적고 있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무대 속에 극히 작은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조그만 점의 한구석에서 일시적인 지배자가 되려고 장군이나 황제들이 흘리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 또 이 점의 어느 한구석의 주민들이 거의 구별할 수 없는 다른 한 구석의 주민들에게 자행했던 무수한 잔인한 행위들, 그들은 얼마나 빈번하게 오해를 했고, 서로 죽이려고 얼마나 날뛰고, 얼마나 지독하게 서로 미워했던가를 생각해 보라.’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우주의 외계인이 보는 관점에서 말이다.
이 <골든 디스크>에는 당시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의 인사말도 실려 있지만 세계 각국 고대인들의 언어와 함께 55개국 언어로 된 인사말도 들어 있는데 다행히도 한국어도 있다. 1초 정도의 신순희 씨의 인사말 “안녕하세요?”다. 미국 코넬대 어학부에서 각국의 언어를 선정하던 중에 신순희 씨가 당시 유학 중이었거나 또는 신순희 씨가 코넬대 어학부로부터소개를 받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당시 35세였다니 지금 살아있으면 77세다.
<보이저 2호가 우주의 외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골든 디스크. 지구에서 살았던 인류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