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축복(祝福)나이가 들어간다는 반증일까?최근 사람들을 만나면서 ‘맛 있는 거 먹고 좋은 옷 입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60 전후를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되는데 이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인가. 자식들에게 기댈 수 없다는 생각 때문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전 재산을 정리하여 자식에게 약간만 물려주고 1년에 반 이상은 해외로 놀러 다니면서 산다. 열심히 살았으니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제 인생에서 남은 일은 즐기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정치와 종교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노자(老子)의 <도덕경>은 해석이 어려워서, 혹은 해석의 다양성 때문에 잘 읽혀지지 않지만 함석헌 선생의 고백처럼 필자 역시 노자의 도덕경을 접한 뒤에야 인생과 우주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10년 전부터의 일이다.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도덕경 3장.부분)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음을 비우고 배는 채우며 뜻은 약하게 하고 몸은 강하게 하라’는 뜻이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백성을 객체로 본다면 백성을 그저 단순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 통치철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연인 개인을 기준으로 보면 ‘쓸데없는 데에 마음과 뜻을 집중하지 말고 배불리 먹고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다. 약간 확대하면 ‘무리한 욕심 부리지 말고 쓸데없는 이념이나 사상을 멀리하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의 인생’라는 뜻이다. 지(志)는 이념이나 신념을 가리킨다. 有殺身以成仁 無求生以害仁(유살신의성인 무구생이해인-논어 위령공편)-‘오직 인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인의를 버리고 목숨을 구하려 하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노자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한다. 인생은 그저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노자는 인의(仁義)를 위해 몸이나 마음을 다치는 것은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종교를 위해 순교하는 것도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또 있다.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甘其食(미기복 안기거 락기속 감기식-도덕경 80장.부분) 급기야 노자는 ‘좋은 옷을 입고 편안하게 거주하고 풍속은 즐기고 좋은 음식을 먹어라’라고 가르친다. 樂其俗(낙기속)이 특별하다. 노자에 의하면 고상한 인품이나 수준 높은 지식 등 그런 것은 인생에서 별 의미가 없고 즐겁게 사는 게 최고의 가치라는 뜻이다. 속(俗)되게 살아야 한단다. 위정자들이 백성에게 그렇게 하도록 정치를 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인간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그렇게 살라는 뜻인지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다.
인생을 즐겨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고매한 인품이나 지식 그런 것은 인생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그저 피곤할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기도 하다. 고상한 사람은 일단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 자기 이미지 관리에 혹시 흠이 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한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늘 지식을 자랑하려고 아는 것을 늘어놓는다. 듣는 사람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지식인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고상함과 지식은 혼자 간직하면 될 일이고, 우선 주위 사람을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는 품성이 선(善)이 아닐까? 고상하고 배려심 많고 품격이 있는 중에 재미까지 있으면 족히 군자(君子)라 할 수 있다. 군자가 별 게 있나?
그런데 공자(孔子)도 인생을 그렇게 따분하게 살라고만 하지는 않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논어 위정편 13)-공자가 특히 좋아했던 음악을 두고 한 말인 듯 하지만 어쨌든 공자 선생님도 지식으로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보다 직접 즐겨야 제멋을 안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