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이 또한 지나가리라’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왕이 “내가 승리하여 기쁠 때 교만해지지 않고 내가 절망에 빠져 슬플 때 용기를 주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 달라”는 주문을 받은 보석세공사는 현자(賢者)들을 찾아다녔으나 마땅한 글귀를 구하지 못하자 마지막으로 왕의 아들 솔로몬이 가르쳐 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 바쳤는데 왕이 크게 만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참으로 절묘한 글귀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잘 나갈 때는 절제를, 힘들 때는 희망을 주는 명언으로 특히 어려운 상황을 위로하면서 용기를 주고자 할 때 자주 쓰이는 글이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어원(語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없다. 한자숙어로는 ‘是亦過矣’라고 쓰지만 역시 고사(古事)가 있는 것은 아니고 뜻을 직역하여 만든 말이다. 아마 오래 전 누군가 상황이 어려울 때 쓴 말이 공감을 얻으면서 수 천 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된 말이 아닐까 싶다. 동서고금의 성인이나 현자들, 혹은 그 많고 많은 문학작품에서도 이 말과 딱 들어맞는 글귀는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우둔한 필자가 이와 뜻이 매우 상통하는 문구를 찾았다. 노자 도덕경 23장에 나오는 말이다.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못 한다-설명이 필요 없다. 느낌이 바로 온다. 해석의 편의를 위하여 나머지 문장을 번역으로 보면 “드문 말이지만 자연(천지의 법도)에서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한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그것은 천지(天地)다. 천지조차 그런 것을 오래 가게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야 어떠하겠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딱 맞지 않는가? 도덕경 7장에는 또 天地長久(천지장구)라는 말이 있다.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지만 결국은 천지는 오래 간다는 의미다. 노자는 이를 자연(自然)이라 했다.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큰 강과 바다는 작은 강물을 가려 받지 않는다. 세상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게 마련이다. ‘토로나 19’로 고통 받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까짓 거 인생이 運七技三(운칠기삼) 아닌가? 운이 7이고 기술이 3이다. 세월이 약이다. ‘이 또한 지나간다’ 회오리바람이나 소나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