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믿으면 손해 보는 신문국민연금과 최저임금의 불편한 진실세계 공적(公的) 지식인 1위로 선정되었던 미국 MIT의 노엄 촘스키 교수가 여러 책에서 ‘언론은 국민의 편이 아니라 권력과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 한다. 언론은 교묘하고 정교한 방법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 한다’고 주장한 이론은 이미 고전(古典)적 담론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돈이 지배한다는 세상사에서 언론이라고 예외가 되지는 못할 터, 구독자 외에는 돈 한 푼 안내는 국민들의 편에 서는 언론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의 목탁’이니 ‘사회의 거울’이니 하는 말은 언론사 시험 기본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된 지 오래다.
언론도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상법(商法)에 따라 영업활동을 하는 회사 그 이상은 아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흉내를 내며 겨우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현대 언론의 민낯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언론은 이미 정치권력이자 경제권력이 되어 있다. 재벌과 연결되어 있는 메이저 언론사의 혼맥(婚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펜도 잉크가 있어야 먹물이 나오듯이 언론도 먹고 살기에 바쁘다. 펜에 잉크를 채워야 한다.
나는 집에서 중앙일보를 보고 목욕탕에서 조선일보를 본다. ‘김정일 사망’ 등 오보(誤報)는 흔한 일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살아남기 위해 ‘일본천황 만세’를 외친 신문도 있다. 교묘하고 정교한 방법으로 국민의 사고(思考)와 정서(情緖)를 호도하는 기사는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찾아낼 수 있다.
특정 이념이나 권력, 자본에 굴종 내지 아부하는 기사 말이다. 얼마 전 주요 언론사 간부들이 삼성의 장충기 본부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언론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을 넘어 천박함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눈 밝은 이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 눈을 뜬 일부 사람들은 그들을 기레기(기자+쓰레기. 쓰레기 같은 기자)라고 부른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메이저 신문이라는 조·중·동 기사나 논설을 보면 도대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글을 쓰는지, 사주(社主)를 위해서 글을 쓰는지 분간이 어렵다. 조·중·동 기자들은 대부분 SKY출신인데 과연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기사를 쓰는 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80년대 후반 필자 역시 조선일보사 시험을 치렀다. 물론 보기 좋게 떨어졌지만 만약에 필자도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더라면 수구보수와 사주인 방상훈 일가의 눈치를 열심히 살폈을 것이다.
사주를 위해서 글을 써야 살아남고 가족을 건사할 수 있다는 데에야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은 환경의 지배를 받고 거기에 길들여지면 스스로 가치관과 신념을 바꾸고 합리화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측은하기도 하지만, 나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남 탓하는 것도 위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근래에 느끼는 거대 언론, 특히 메이저 신문이 국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두 가지 예를 들고자 한다. 첫째는 국민연금이다. 근래에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고마움에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대체로 70대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4대 공적연금 수령자 외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혹은 일정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국가정책에 따라 마뜩찮은 기분으로 들었던 국민연금이 효자(孝子)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를 예상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뺏기는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들었던 국민연금이 매달 25일 오전이면 ‘국민연금 드림’이라는 문자와 함께 현금이 입금된다. 작게는 2∼30만원, 많게는 200만원 넘는 수령자도 있다. 친절하게도 25일이 휴일이면 그 전날 어김없이 보내준다. 웬만한 효자보다 낫다는 게 연금을 받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어느 효자가 한 시간도 어기지 않고 부모에게 용돈을 보내주는가?
더구나 연금을 붓기 시작한 30대에는 평균수명이 70세 정도로 알고 별 도움이 되겠나 싶었는데 100세를 넘게 살아 대통령 이름을 몰라도 꼬박꼬박 연금을 보내주니 이보다 고마운 데가 어디 있겠는가? 이쯤 되면 효자 중에서도 상효자(上孝子)다. 재수 없어서 본인이 죽더라도 마누라가 살아 있을 동안에 60%를 준다고 하니 이 또한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요즘 연금 날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고마운 국민연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젊었을 때 연금을 좀 더 넣어둘 걸’하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필자 또한 그렇다. 그러면 왜 연금을 좀 더 넣지 않았을까? 이유는 두 가지. 우선 현실을 살아가기 빠듯해서다. 이건 본인 스스로의 상황이고 판단이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중요한 사실은 신문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기사를 써대니 돈 떼일까봐 불안해서였다. 사실이지 않는가? 연금이 고갈 된다는데.... 신문에서 연일 국민연금이 곧 고갈된다고 대서특필 하는 데 연금을 더 넣을 생각을 할만치 예지력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메이저 신문들의 명백한 오보이자 왜곡보도 때문에 현재의 연금수령자들이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연금액수가 정해진 직장인들도 몇 가지 간단한 서류를 제출하면 연금을 더 낼 수 있고 자영업자들은 전화 한 통화로 더 불입할 수 있는 제도는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 몇몇 메이저 신문들이 국민연금이 곧 고갈된다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바람에 죄 없는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메이저 신문들이 국민연금은 절대로 고갈되지 않으니 노년의 안정을 위해서 좀 더 불입하라고 했더라면 지금쯤 많은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부언하자면 국민연금은 절대 고갈될 수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이미 나라가 망하고 난 뒤의 일이다.
두 번째, 메이저 언론의 허구와 왜곡은 최저임금이다. 2018년과 지난 해 이맘 때 쯤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메이저 언론은 나라가 곧 결단날 것처럼 연일 기사를 쏟아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돈 많은 경제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사주를 받았는지 알바들의 임금이 오르면 편의점 업주들이 곧 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자살했다는 편의점 업주 한 사람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인건비가 좀 더 지출되니 소득이 좀 줄었을 수는 있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못해 평화롭다. 문제의 핵심은 임대료와 판매수수료였는데 최저임금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당장 동네를 살펴보자.
편의점이 더 생기는지 문을 닫는지. 골목 요지마다 편의점은 더 생기고 있지 않는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알바로 겨우 살아가는 많은 아주머니들과 청년들에게 겨우 2∼30만원 월급 더 주는 게 아까우면 편의점 업주 부부가 직접 일하면 될 일이다. 최저임금이 올라 세 식구 중에서 두 식구가 최저임금이라도 받으면 기본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나라가 정책을 펼치는 게 그렇게도 배가 아픈가? 말로만 사회공동체가 어떠니 외치지 말고 말이다. 웬만한 공직이나 회사에서는 퇴직 전에 사회적응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강사들이 강조하는 공통된 충고가 있다. 퇴직하고 사회에 나가면 딱 두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는 것. 그것은 ‘사기꾼과 자식’이란다. 사기꾼이나 자식에게 당하지 말고 국민연금을 더 넣자. 국민연금은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다. 그리고 없는 사람도 좀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최저임금 주는 거 너무 인색하지 말자. 우리나라에는 최저임금만 받는 사람들 아직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