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지천명(地天命)에 자연과학 공부를 시작하다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어느 분야든지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초·중등학교 때에는 그저 공부를 해야 하나보다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학교를 다녔다. 뚜렷한 목표의식도 없었다. 당연히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고 가방만 둘러매고 습관처럼 학교에 왔다 갔다 했다. 특별히 지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다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으니 성적이야 뻔했다.
특히, 나는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에 전혀 흥미가 전혀 없었다. 수업 시간이 고통스러웠을 정도였다. 인수분해는 왜 알아야 하는지, 방정식은 왜 푸는지, 미분·적분의 개념이 무엇인지, 삼각함수는 어디에 쓰려고 배우는지 알지 못했으니 자연히 짜증만 났다. 나는 지금도 나를 가르쳤던 수학선생님들이 원망스럽다. 인수분해가 모든 수학의 근본이며 방사선의 감쇄기에 따른 안정성, 댐의 두께를 결정하는 일, 다른 별에 도달하는 우주선의 방향과 속도, 비행기의 항로, 내가 타고 가는 자동차의 공기 저항 등 평면이 아닌 시·공간에서는 모두 미·적분과 삼각함수, 방정식이 사용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세 개를 알면 하나를 알 수 있는 게 방정식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피라미드를 만든 노동자들에게 빵을 정확히 나눠주기 위해서 기하학을 사용했다는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수학이 논리의 정확성은 물론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분야에서도 긴요하게 활용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니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991년 나의 졸저 <상선암 가는 길>에서 밝혔지만 군 제대를 하고나니 할 게 없어서 “에라, 대학이나 가보자, 혹시 인생길이 열리는지. 말로만 듣던 여대생들과 미팅도 하고.”라고 간 게 영문학과였다. 독해는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지만 영시와 영소설, 영문법은 또 아니었다. 교수가 될 것도 아니고 소설가가 될 것도 아닌데 왜 영시와 영소설을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과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으로 학과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점점 사회과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학을 공부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30년도 넘는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다.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에서도 제대로 공부한 게 별로 없는 셈이다. 언론사 시험공부를 했지만 실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또 당시에는 나이 제한이 있어서 26살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한 필자에게는 제대로 입사시험을 치러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그런데 50 지천명의 나이에 우연히 노자(老子)의 <도덕경>을 만나 심취하게 되었다. 함석헌 선생처럼 말이다. TV에 김용옥 교수의 노자강의가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이어 이경숙이라는 여성이 김용옥의 도덕경 해석에 대해 반박하는 책을 발간하던 시점이었다. 김 교수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동양 고전 공부 붐이 일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도덕경 책을 거의 다 사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노자에게 빠져들었다. 내친김에 순 독학으로 공자(孔子)의 <논어>와 <중용>도 공부했다. 동양고전 공부를 통하여 세상과 인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되니 이상하게도 자연과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물질과 우주를 모르고는 반쪽짜리 공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책을 뒤져 보았다.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 과학계에서는 고전(古典)이 된 책도 읽었다. 1천 페이지가 넘는 책이라서 띄엄띄엄 읽었지만. 내 나이 50대에 노자와 공자에 이어 자연과학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을 만나게 된 것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리차드 도킨스, 유발 하라리 등의 저서도 심도 있게 읽었다. 인터넷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말이지 인터넷은 모르는 게 없었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동양고전과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사유의 폭을 넓히고 우주 속에서 나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우주와 물질, 그리고 동양 고전을 공부하면 인생과 세상을 이해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우선 물질과 우주의 작동원리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런 바탕 위에 동양고전을 통해 다지면 더 충실하다고 믿는다. 인터넷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물질부터 알아야 정신을 알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질과 공간부터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고 책읽기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칸트니 헤겔이니 하는 서양 철학자들의 책을 읽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우리 삶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