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관광단지가 수년째 흉물처럼 방치된 폐건물로 인해 관광도시의 위상을 위협받고 있다.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경주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무대를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그 중심에 놓인 보문관광단지는 노후화된 건물, 멈춘 개발, 관리 부재라는 삼중고에 빠져 있다. 콩코드호텔을 비롯한 장기 휴‧폐업 숙박시설 4곳이 그 상징이다.
콩코드호텔은 1979년 보문단지의 상징으로 문을 열었지만 2015년 폐업 이후 10년 가까이 아무런 진척 없이 방치돼 있다. 외벽은 낡고, 정원은 황폐하며, 인근 상가는 침체돼 있다. 한국콘도, 경주조선온천호텔, 신라밀레니엄파크 등도 유사한 상황이다. 복합쇼핑몰 예정지였던 중심상가 부지 역시 공터로 남아 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관광 심장’이 썩어가는 현실이다.
문제의 본질은 ‘규제와 책임의 공백’이다. 관리기관인 경북문화관광공사는 개발 권한을 민간에 넘겼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고, 착공 지연에 따른 제재 수단도 없다. 건폐율 제한은 여전히 시대를 거스르고 있으며, 민간 개발 제안은 ‘형평성 논란’에 가로막힌 채 답보 상태다. 결국 행정의 무관심과 구시대적 규제가 보문단지를 손 놓은 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와중에 APEC 정상회의 개최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21개국 정상과 정부 대표단, 기업인 등 2만명이 찾는 대형 국제행사이지만, 경주의 숙박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PRS급 객실은 고작 8개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고급 숙소는 노후화돼 리모델링이 시급하다. HICO 인근 콘도는 회의용 숙소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주시와 경상북도는 PRS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리모델링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단기적 보완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규제 완화, 공공-민간 협력, 사업성 확보를 위한 전략적 인센티브 도입 등 보다 구조적 해법이 절실하다.
보문단지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다. 경주의 자존심이자 대한민국 관광의 상징이며,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 자원이다. 세계는 ‘지속가능한 관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경주 역시 과거에 머무를 수 없다. 시대 흐름에 맞게 보문단지를 리디자인하고, 실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지금의 무책임과 방치는 ‘관광 르네상스’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할 시간이 없다. 경주가 세계 속의 관광도시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