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수주한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의 본계약 체결이 하루를 앞두고 체코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전격 중단됐다. 이는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브르노 지방법원이 인용하면서 벌어진 일로, 유럽 첫 원전 수출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번 프로젝트는 일정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6일(현지시각)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은 “계약이 체결될 경우, EDF는 본안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계약 기회를 영구히 상실하게 된다”며 계약 체결을 일시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7일로 예정됐던 한수원과 체코 국영전력사 체코전력공사(CEZ)의 자회사인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Ⅱ) 간의 최종 계약 서명은 무기한 연기됐다.
프랑스 EDF는 이미 현지 반독점 당국(UOHS)에 한수원의 수주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UOHS는 지난달 24일 “심사 권한이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그러나 EDF는 이에 불복하고 이달 2일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결국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체코 정부와 한수원은 즉각 반발했다. 체코 페트르 피알라 총리는 “우리는 법원의 독립적 판단을 존중하지만, 입찰 절차는 정당하게 진행됐다고 확신한다”며 “한수원이 제출한 제안은 EDF보다 더 우수했으며, 이번 계약은 체코 국민에게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발주사인 EDUⅡ 역시 “EDF의 소송이 최종적으로 부당하다고 판명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체코 측과 긴급히 협의 중이며, 향후 일정은 추가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업은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1,000메가와트(MW)급 신규 원전 5·6호기를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총 사업비는 약 4000억 코루나(한화 약 26조2000억원) 규모다. 체코 정부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 3월 국제 입찰을 진행했고, 2023년 7월 한수원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수주 경쟁에는 EDF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참여했으며, 기술력과 경제성을 앞세운 한수원이 최종 승자로 결정됐다.
이 같은 성과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6년 만의 원전 수출 쾌거로 평가됐지만, 이번 법원 판결로 한수원은 다시 한 번 프랑스 EDF의 법적 공세에 막히는 상황을 맞게 됐다.
한편 이번 본계약 체결식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통령 특사단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체코를 방문 중이었다. 특사단은 계약 체결과 함께 체코 총리, 상원의장 등과 양국 간 경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행사 자체가 취소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계약 체결이 무산된 상황에서 체코 법원은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계약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본안 재판은 수개월 이상 걸릴 수 있어, 체코 정부와 한수원 양측은 신속한 절차적 해소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체코전력공사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입찰은 공정하게 진행됐으며, 한수원의 제안은 모든 측면에서 EDF보다 우수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체코 정부는 이번 사업이 자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계약 지연이 가져올 정치·경제적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은 체코의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관련된 모든 법규를 성실히 준수할 것이다. 특히, 체코 신규원전사업의 입찰 과정이 체코 정부, 체코전력공사(CEZ) 및 발주사(EDUII)의 감독 아래 공정하고 투명하며,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체코경쟁보호청(ÚOHS)의 1심(24년 10월 31일) 및 최종 기각 결정(25년 4월 24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입찰 결과를 훼손하려는 경쟁사의 시도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다. 이에, 한수원은 최종계약 체결과 관련한 자격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체코 측과 적극 협력하여 대응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법적 변수에 따른 계약 리스크’로 진단하며, 향후 유럽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제도적·외교적 대응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전 수출 전략을 국가 산업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는 한국 정부로서는 이번 사건이 일회성 해프닝이 되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한수원은 체코 측과 협의를 통해 상황 진정에 나서는 한편, 법적 대응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체코 원전 수주는 단순 수출을 넘어 기술·부품·건설·운영 등 원전 생태계를 총망라한 ‘팀코리아’의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계약 연기 이상의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도록 신중한 외교적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