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원전 등에서 방사성폐기물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 없이 자체처분해온 사례가 대거 적발됐다.
원안위는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약 4개월간 한수원이 운영 중인 원전 전반을 특별점검한 결과, 방사성폐기물 자체처분 절차를 지키지 않은 사례가 총 75건에 달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이 가운데 월성본부에서만 30건(폐기물 879개)이 확인되며 시민사회 우려가 집중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자체처분은 폐기물의 방사능 농도가 법령상 허용기준보다 낮을 경우, 일반폐기물과 동일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원안위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절차 위반으로 간주된다.
이번 점검에 따르면, 월성본부 외에도 울진 한울원전이 23건(3791개), 고리·새울 12건(423개), 한빛 10건(319개)으로 나타났다. 적발된 폐기물은 축전지, 조명기구, 화재감지기, 항온항습기, 소화기 등 다양한 품목으로 파악됐다.
더 큰 문제는 일부 폐기물에 대해 방사능 농도 측정을 거치지 않고, 표면 오염도만을 기준으로 자체 판단해 폐기한 사실도 드러난 점이다. 원안위는 “재검증 결과 방사능 농도가 자체처분 기준 대비 평균 2.37% 수준에 불과해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경주 지역 시민단체와 원자력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절차 미준수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동경주권발전협의회를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는 “방사선관리구역 내 폐기물 처리 절차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며 “보안구역이라는 이유로 정보 접근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절차 위반은 곧 투명성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삼중수소 누출 당시의 은폐 의혹 사례를 언급하며 “한수원의 반복적인 무단 폐기는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원안위는 한수원에 절차서 개정 및 감리체계 강화를 포함한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관련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절차 무시가 관행이 되어선 안 되며, 이번 사건이 단순 행정 조치로 끝나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사안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투명성과 안전 규제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으며, 후속 조치의 강도와 실행 여부에 따라 국민적 여론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