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폐철도 부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 경주역사를 포함한 폐선·폐역사 부지는 오랜 기간 규제와 행정 공백 속에 사실상 도시의 흉물로 방치돼 왔다. 철도 고속화와 노선 직선화로 전국 곳곳에서 폐철도 부지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법적 틀이 없어 지방정부는 손발이 묶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 바로 ‘폐철도법’이며, 지금 그 제정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해지고 있다.   방치된 폐철도 부지를 시민의 공간으로 되돌려달라는 지역사회의 절박한 요구가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는 과정 그 자체이다. 경주역 앞에서 시작된 서명운동은 계림중 네거리 천막, 주요 거점 순회 서명 부스, 온라인 구글폼 참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며 서명이 모였다. 이는 지역 주민이 직접 입법 절차에 참여해 변화를 요구한 보기 드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특히 이러한 시민 의지가 국회 논의 진전에 따라 천막 철거로 이어졌다는 점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정책 실현의 발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폐철도법은 개발 지원이 아니다. 도시 속 유휴·방치 공간을 안전하게 정비하고, 주민 편의시설·문화공간·녹지공간 등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법적 기반이다. 지금까지 지자체는 ‘철도 유휴부지 활용 지침’이라는 행정 가이드라인에 의존해 왔지만, 강제력이 없고 절차적 안정성도 부족해 실질적 개발이 제한되었다. 법률 제정은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지방정부가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 전략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특히 경주처럼 국제행사를 치른 지역은 도시 이미지와 관광 경쟁력의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포스트 APEC 시대를 준비하는 경주에 폐철도법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역 여야 정치권이 모두 폐철도 문제 해결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주지역위원회가 법안 발의를 주도하는 가운데,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도 구 경주역사 부지에 경주를 대표할 랜드마크를 조성하고 시민 편의시설·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법적 근거 마련에 뜻을 함께했다. 실제로 전국 폐철도 소재 지역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세미나가 열렸으며,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폐철도법이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국가적 도시재생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다.   경주의 폐철도 부지는 시민의 일상과 맞닿은 생활문화 공간이 될 수 있고, 관광도시 경주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자산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방치된다면 도시 활력 저하는 물론, 안전문제·환경관리 문제 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제대로 활용된다면 경주의 새로운 성장축,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재생의 중심이 될 수 있다.   폐철도법 제정은 이제 ‘필요성 논의’ 단계가 아니라 ‘실행’ 단계로 옮겨가야 한다. 시민이 서명으로 보여준 의지는 이미 충분히 확인됐다. 정치권의 초당적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의 책임 있는 입법과 관계부처의 실질적 조정뿐이다. 더 이상 방치된 폐철도 부지를 미래로 미룰 이유는 없다. 시민의 뜻과 지역의 필요가 만나는 지금, 폐철도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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