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가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선거구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논의를 진행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달로 논의를 넘기면서 유권자와 예비후보자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선거 일정은 이미 본격화됐는데 출발선이 그어지지 않은 채 경쟁을 시작하라는 것은 정치권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정개특위는 인구산정기준일, 광역의원 선거구 기준, 권역별 비례대표 등 핵심 쟁점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특정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헌법이 정한 기준을 위반한다며 시한을 명확히 적시한 이후 이루어진 후속 조치이지만, 국회가 정개특위를 구성한 시점 자체가 올해 1월 9일로 이미 늦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반복된 ‘지각 획정’이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지역에서는 혼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경주에서도 종전 선거구 기준으로 등록이 이루어졌지만, 다음달 선거구가 조정될 경우 후보들은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선거운동 범위가 달라지고 유권자 구성도 변하면 조직 운영, 홍보 방식, 표심 공략 계획이 모두 무력화된다. 특히 초선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들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권자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자신의 선거구가 어떻게 재편되는지,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지가 불투명하면 선거 참여 의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려면 예측 가능한 제도와 명확한 규칙이 필수다. 선거일을 100일 남짓 남겨놓고도 선거구가 미확정인 현실은 선거제도 전체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일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일정 지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정치 불신의 반복이라는 점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구획정안을 선거일 6개월 전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매번 법정 시한을 넘기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2005년 8월에 획정이 완료된 사례는 그나마 빠른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법정 시한을 지킨 것도 아니었다. 제도가 있음에도 실천되지 않는 법령의 공백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광역단체 통합 논의까지 겹치며 변수는 더 복잡해졌다. 국회에서는 충남·대전, 전남·광주,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논의 중인데, 특별법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보니 선거구 결정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국회가 책임을 회피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될 명분이다. 복수 시나리오를 고려한 의원정수 산정과 지역별 기준 제시는 국회의 기본 책무다.
일부 의원들의 발언도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선거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는 식의 발언이나 선관위에 책임을 돌리는 주장 등은 정확한 구조 이해 없이 책임을 떠넘기려는 태도에 불과하다. 기초의원 선거구획정은 법적으로 각 광역단체에 설치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담당하며, 그동안 3·4인 선거구로 제출된 획정안이 시도의회에서 반복적으로 2인 선거구로 쪼개져 온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국회는 광역단체별 의원정수를 조속히 확정해야 한다. 행정통합 가능성을 포함한 시나리오별 정수 산정도 필요하다. 둘째, 통합 특별법 처리 여부를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통합 논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선거구 획정을 미루는 것은 유권자 피해만 늘릴 뿐이다. 셋째, 기존 선거구 승계 여부 등 절차적 쟁점을 신속히 정리해야 한다. 결정 미루기야말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그러나 축제가 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칙과 준비가 필요하다. 출발선이 정해지지 않은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먼저 뛰라고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신속한 결정이 지금 정치권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정치권이 이번에도 결정하지 못한다면, 혼란의 대가는 결국 국민이 떠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