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경주지역 일부 선거가 투표도 치르기 전에 당선자를 확정하면서 유권자 선택권과 지방자치 대표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경북도의원 경주지역 5개 선거구가 모두 국민의힘 후보 단독 등록으로 무투표 당선됐고, 경주시의원 다선거구에서도 후보자 수가 선출 정수와 같아 투표 없이 당선자가 결정됐다. 전국적으로도 이번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가 504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경주지역 사례는 지역 정치의 경쟁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투표 당선은 현행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수가 선출 정수를 넘지 않을 경우 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선거일에 해당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제도다. 행정 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선거 절차를 생략한다는 취지는 있지만,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반복될 경우 문제는 단순한 절차 간소화에 그치지 않는다. 유권자가 후보를 비교하고 공약을 검증하며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경주지역 경북도의원 선거는 이러한 문제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냈다. 제1선거구부터 제5선거구까지 모든 선거구에서 국민의힘 후보만 단독 출마했다. 선거구가 5개로 늘어났지만 경쟁 후보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경주시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도의원 선거구에서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택할 수 없었다. 후보자의 정책 역량, 의정 활동 평가, 지역 현안에 대한 입장 역시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다.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무투표 사례가 나왔다. 감포읍·문무대왕면·양남면을 포함한 경주시의원 다선거구에서는 국민의힘 후보 2명만 등록해 선출 정수 2명과 후보 수가 같아졌다. 주민 생활과 가장 가까운 기초의원 선거에서조차 경쟁이 사라진 것이다. 기초의회는 예산 심의, 조례 제정, 행정 감시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된 권한을 가진다. 그런 대표자를 유권자가 평가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면 지방의회의 정당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무투표 당선의 가장 큰 문제는 참정권이 형식적으로만 남는다는 점이다. 선거권은 단순히 투표소에 가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후보를 비교하고, 공약을 따져보고, 찬반의 뜻을 표로 표현하는 권리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무투표 선거구의 유권자는 해당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다.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셈이다. 유권자의 알 권리도 함께 위축된다.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후보자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선거운동이 중단되면 후보가 유권자에게 공약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과정도 사라진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정책과 자질을 비교하기 어렵고, 후보 역시 지역 주민과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설득할 기회를 잃는다. 결국 무투표 당선은 유권자와 후보 사이의 정치적 소통을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경주지역 무투표 당선은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 경주는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다. 이번 도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전원 단독 출마한 것은 이러한 정치 지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제는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선거 경쟁이 사라지고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천이 사실상 본선이 되는 지역에서는 유권자의 선택보다 정당 내부 결정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후보는 시민 전체를 향한 정책 경쟁보다 공천 경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주민을 설득하는 정치, 지역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정치, 행정 권력을 감시할 역량을 검증받는 정치가 약해지고, 특정 정당 내부의 결정이 지방의회 구성을 좌우하게 된다. 신인 정치인과 소수 정당, 무소속 후보의 진입 장벽도 높아진다.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후보들은 출마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선거가 치러지기도 전에 승패가 정해졌다는 인식이 퍼지면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의제는 지역 정치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다. 결국 지방의회는 다양성을 잃고, 시민들은 익숙한 정당 구도 안에서만 대표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무투표 당선자를 개인적으로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법이 허용한 절차에 따라 후보로 등록했고, 경쟁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제도와 정치 구조의 문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무투표 당선이 반복되면 유권자는 선거에 대한 관심을 잃고, 정당은 후보 발굴에 소극적이 되며, 지방의회는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워진다.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2인 선거구 중심의 기초의원 선거구 구조를 재검토하고, 3인 이상 중대선거구를 확대해 다양한 정당과 후보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당 역시 승산만 따질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 발전과 유권자 권리 보장을 위해 후보 발굴과 정책 경쟁에 나서야 한다. 청년, 여성, 신인 정치인의 출마를 지원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경주지역 무투표 당선은 단순한 선거 결과가 아니다. 지방자치가 형식은 갖췄지만 내용은 비어갈 수 있다는 경고다. 투표 없는 당선, 경쟁 없는 선거, 검증 없는 대표 선출이 반복된다면 지방의회는 시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경주 정치권은 무투표 당선을 관행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유권자 선택권을 회복하기 위한 제도적·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