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출범을 앞둔 대구·경북이 다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지역 앞에 놓인 과제는 더 무거워졌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대구경북신공항,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유치,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어느 하나 따로 떨어진 현안이 아니다. 모두 TK의 미래 생존력과 직결된 핵심 과제다.
최근 지역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광주·전남 등 특정 권역에 우선적으로 기울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전남 행정통합에는 정부와 여당의 지원 신호가 뚜렷한 반면,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속도 조절론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후공정 투자와 2차 공공기관 이전 우선권까지 호남권에 쏠릴 수 있다는 전망이 더해지면서 TK의 위기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균형발전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또 다른 특정 권역 집중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진정한 균형발전이라 할 수 없다. 호남도 성장해야 하지만 영남이 소외돼서는 안 된다. 국가 전략산업과 공공기관 이전은 정치적 배려가 아니라 산업 기반, 인프라, 인력, 지역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결정돼야 한다.
경북 구미는 이미 반도체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지역이다. SK실트론, 원익QnC 등 소재·부품 기업을 중심으로 비수도권 반도체 공급망 거점 역할을 해왔다. 이런 기반을 제쳐두고 새로운 반도체 거점을 정치적 신호에 따라 조성하는 듯한 모습이 비친다면 정책 일관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대구 역시 AI 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TK의 산업 전략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
대구경북 행정통합도 마찬가지다. 통합은 단순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라 신공항, 산업, 물류, 인재, 공공기관 이전을 하나로 묶는 광역 생존 전략이다. 대통령의 현실론만 탓할 일이 아니다. 대구시와 경북도, 지역 정치권이 먼저 통합 이후 재정특례, 권한 이양, 시·군 자율성 보장, 북부권 균형발전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내부 설계가 빈약하면 외부 지원도 명분을 얻기 어렵다.
민선 9기 TK 지도부에 필요한 것은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이다. 호남 우선론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TK가 왜 행정통합의 선도 지역이어야 하는지, 왜 공공기관 이전과 반도체 투자가 구미·대구·포항·경주 축으로 와야 하는지 국가적 관점에서 설득해야 한다. 원전 기반 전력, 산업용수, 구미 전자산업 생태계, 포항 이차전지, 경주 원자력·관광 자원, 신공항과 영일만항을 연결한 투포트 전략을 하나의 그림으로 제시해야 한다.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의 균형발전은 오래갈 수 없다. 정부는 국가 전략산업 배치와 공공기관 이전에서 객관적 기준과 투명한 절차를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TK는 기다리는 지역이 아니라 요구하고 설계하고 관철하는 지역이 돼야 한다. 민선 9기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다. 대구·경북이 행정통합과 신공항, 첨단산업을 다시 하나의 전략으로 묶어낸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장하(전 경상북도 명예 감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