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읍 두류리 산업폐기물 매립장 조성 논란이 다시 지역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안강 주민 50여 명은 지난 15일 경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리가 추진 중인 두류리 산업폐기물 매립장 관련 도시관리계획 결정 변경안을 전면 불허하라고 촉구했다. 주민들은 경주시와 경주시의회에 반대 의견서도 제출하며 “평범한 일상과 생존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경주시가 추진하는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를 주민들이 사실상 산업폐기물 매립장 허용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경주시는 이번 심의가 폐기물 매립장 허가 자체와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기존 도로 확장 등 도시계획시설 결정 절차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시각은 다르다. 매립장 예정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확장되고 도시계획 변경이 이뤄진다면, 결국 매립장 조성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행정은 절차를 따르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주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절차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특히 두류리 일대는 이미 폐기물 처리업체와 각종 공장이 밀집해 악취와 환경문제를 둘러싼 민원이 이어져 온 지역이다. 여기에 산업폐기물 매립장까지 들어설 경우 환경오염, 교통 불편, 대형 운반 차량 증가, 지역 이미지 훼손, 인구 유출 등 복합적인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이 제기한 공적 재원 사용 문제도 가볍지 않다. 특정 민간업체가 추진하는 산업폐기물 매립장 운영을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해 도로를 확장하는 결과가 된다면 행정의 공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경주시가 정말로 지역 기반시설 개선을 위한 도로 확장이라고 본다면, 그 필요성과 공공성을 주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특정 사업자의 편의를 위한 기반 정비라는 의심이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행정 설명도 주민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가장 시급한 것은 소통이다. 주민설명회와 공개적인 의견 수렴 없이 서류상 절차만 진행한다면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법적 최소 요건을 충족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민 생활권과 환경권이 걸린 사안이라면 행정은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시의회 역시 형식적인 의견 청취에 그쳐서는 안 된다. 주민 의견서의 내용과 경주시 행정 절차의 적정성, 환경·교통 영향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산업폐기물 처리는 필요한 공공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시설이라고 해서 주민 불신과 지역 희생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특히 한 번 조성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매립장 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경주시는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를 서두를 것이 아니라 주민설명회 개최, 환경·교통 영향 검증, 도로 확장과 매립장 조성의 관계 공개 등을 먼저 해야 한다.
안강 주민들의 요구는 특별한 특혜가 아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권리의 호소다. 경주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민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행정 신뢰를 가르는 중대한 시험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도시계획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행정의 역할은 절차를 앞세워 갈등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을 해소하고 주민 피해를 예방하는 데 있다.
안강 산폐장 논란의 해법은 분명하다. 경주시는 주민의 생존권과 생활권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주민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행정 결정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지금 경주시가 선택해야 할 것은 사업 추진의 속도가 아니라 주민 삶을 지키는 행정의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