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가족을 위해 준비해라”, “많이 가입할수록 든든하다”는 보험 설계사의 권유를 의심치 않고 복수의 보험에 가입하는 이들이 많다. 매월 적지 않은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하며, 언젠가 찾아올 불행 앞에 남겨질 가족을 지켜줄 단단한 버팀목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가실 분을 보내고 슬픔에 잠긴 유가족이 실제 보험금을 청구하러 보험사 문을 두드렸을 때, 상상치도 못한 현실과 마주한다. 여러 개의 보험을 들었으니 각각의 금액이 모두 합산되어 지급될 것이라는 기대가 보기 좋게 깨지는 순간일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망보험금이라고 해서 모두 중복으로, 합산되어 지급되는 것은 아니며, 가입자가 복수로 가입한 사망 관련 담보가 ‘정액보상’인가, 아니면 ‘실손보상’인가에 따라 실제 수령액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 엄연한 사실을 대다수의 가입자는 보험금을 청구하는 비극적인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보험 상품에서 사망을 담보로 하는 계약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째는 가입 당시 약정한 금액을 조건 없이 그대로 지급하는 ‘정액보상’ 상품이다. 대표적인 것이 생명보험사의 종신보험이나 정기보험입이다. 이 경우 가입자가 A사, B사, C사에 각각 5천만 원씩 사망보험금을 책정해 두었다면, 사망 시 총 1억 5천만 원을 온전히 합산하여 지급받을 수 있다.문제는 두 번째 형태인 ‘실손보상’ 방식의 사망 관련 특약들이다. 주로 손해보험사의 화재보험, 운전자보험, 상해보험 등에 포함된 ‘비례보상’ 형태의 특약이 이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특정 사고로 인한 의료비나 장해, 혹은 특정 배상책임과 연동된 사망 담보의 경우, 보험사들은 ‘실손보상의 원칙’을 적용한다. 실제 발생한 손해액을 한도로 하여 여러 보험사가 분담하여 지급(비례분담)하는 방식이다. 만약 가입자가 이러한 구조를 모른 채 든든하게 보장받겠다는 일념으로 유사한 손해보험 상품을 3~4개 중복 가입했다면, 자신이 낸 보험료에 비례해 보험금을 각각 다 받는 것이 아니라, 전체 한도 내에서 나누어 지급받게 되는 맹점이 존재한다.더욱이 질병사망이냐, 상해사망이냐에 따른 세부 약관의 해석 차이도 유가족을 혼란에 빠뜨리는 주된 요인이다. 가입자는 단순히 ‘사망하면 나오는 돈’으로 인지하지만, 보험사는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을 철저하게 따지낟. 기왕증(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사고를 당해 사망했을 경우,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지급 기준과 비율은 완전히 달라진다. 손해보험의 상해사망은 ‘우연하고도 외래적인 사고’가 직접적인 원인이어야 하므로, 지병이 영향을 미쳤다면 보험금이 대폭 감액되거나 지급이 거절될 수 있다. 여러 개의 보험을 들었어도 정작 청구 시점에는 각 회사마다 심사 기준이 달라 어느 곳은 지급하고, 어느 곳은 부지급 판정을 내리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볼수 있다.이러한 불편한 진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보험 판매 과정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보험 설계 단계에서는 복수 가입에 따른 중복 보상 여부와 비례보상의 한계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실적 위주의 영업 현장에서는 “다다익선”이라는 모호한 수식어로 가입자의 눈을 가리기 일쑤로 가입자 역시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까다로운 약관을 일일이 확인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보험료는 온전히 가입자의 몫이고, 막상 청구할 때 발생하는 불이익과 입증 책임 역시 고스란히 유가족의 몫으로 남게 된다.우리 경주 지역의 주민들 중에도 평생 성실하게 일하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혹은 남겨질 이들을 위해 여러 개의 보험을 품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많다. 이분들이 가진 소박한 권리가 보험사의 교묘한 약관과 설명 부족으로 인해 침해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보험은 불행을 담보로 한 계약이기에, 그 어떤 금융상품보다 투명하고 정직해야 한다.지금이라도 자신이 가입한 복수의 보험증권을 다시 처놓고, 사망 시 지급 조건이 ‘정액’인지 ‘실손(비례)’인지 명확히 확인해야 할것이며 매월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지켜온 가입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남겨진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이다. 보험사들 역시 청구 시점에 잣대를 들이대며 심사를 까다롭게 할 것이 아니라, 가입 시점부터 중복 가입에 따른 실제 수령액의 차이를 명확히 고지하는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