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원 ‘롤모델’? 이종표 전 의원연이은 두 번의 석패...내년 선거에도 도전할까?열정적인 의정활동 사람들 가슴에 지금도 기억 연이은 두 번의 근소한 패배...아쉬움 석패(惜敗-경기에서 약간의 차이로 아깝게 짐). 말 그대로 아깝게 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해서. 2012년 용강·황성 보궐선거에서 고(故) 이경동 후보에게는 불과 68표(0.4%) 차이로,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고작 21표(0.1%)라는 근소한 표 차이로 2위 후보에게 또 졌다.  승리의 신(神)은 이종표 후보를 살짝 비켜간 것이다. 두 번째 패배는 이종표 후보 지지자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 뼈저린 패배였다. 야권성향의 다른 후보자가 출마함으로써 그가 얻은 표 1,589표가 날아가 버렸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이종표 후보를 잘 아는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당시의 선거 분위기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때의 아쉬움을 잊지 못한다. 이 전의원을 잘 아는 유권자들은 선거법이 정한 것 외에는 돈 한푼 쓰지 않고도 그만한 득표를 했으니 대단한 성과라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황성·중부동 주민들의 높은 수준도 물론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모범적 의정활동 평가 많았다이종표 전 의원은 민주노동당 비례로 2006년 통합 제5대 시의회에 진출했다. 마흔을 갓 넘긴 나이였다. 당시 민노당 비례라는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고군분투 성공적인 의정활동을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회고한다. 전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도 의회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종표 전 의원이야말로 기초의원의 롤모델이라는 데에 대체로 수긍한다. 이 전 의원을 수식하는 단어는 단연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성실과 열정. 민노당 출신이었지만 당시 한나라당 출신 남성 의원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하고 토론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료 의원들과도 잘 소통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특히 집행부 공무원들에게 이 전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의원 역할을 한 의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단 한 번도 사적인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이 전의원을 기억하는 공무원도 많다. 시정에 대한 예리하고 날카로운 비판은 기본. 대안 제시에도 남다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경주시 보육과 임대아파트 지원 조례제정에 이어 특히 여성과 노인, 소외계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 제시에 의정활동의 많은 부분을 집중시켰다. 평균 60% 가량이던 의회 출석률은 100%. 해외여행은 한 번도 안갔다. 이 전의원의 활동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경북도 의정대상 금상을 받았다. 이진락 의원, 고(故) 이경동 의원과 함께 경주시 의정감시단(YWCA)의 베스트 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종표 전 의원의 말에 의하면 의원들은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만 외부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며, 언론의 비판, 의정감시단의 활동과 함께 당시 신라방송에서 회의를 생중계한 것도 의정활동의 발전을 이끈 동력이었다며 시의회 회의를 생중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이종표 의원만큼만 해라’ 지적 많아새삼스럽게 왜 이종표 전 의원인가? 근래 시의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일고 있는데 따라 내년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지역정가와 시민사회 일부에서 이종표 전 의원에 대한 의원으로서의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종표 의원만한 의원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의원으로서의 제대로 직분도 행사하지 않으면서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고, 이권에나 기웃거리는 일부 의원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예 출석도 거의 하지 않는 의원도 있다. 의정활동비는 빠지지 않고 받아간다. 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는 등한시하면서 시의원에 당선된 것을 마치 대단한 신분상승이라고 여기는 의원에 대한 반감도 있을 것이다. 회의에 100% 참석하는 성실한 대변자, 약한 자의 편을 들어주는 대변자를 바라는 서민들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두 번의 아까운 패배에 대한 동정심도 물론 있을 것이다. 복지분야 공부에 삼매경이종표 전 의원은 그 동안 못 다한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 현역 의원시절에도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시민의 세금으로 의원활동비를 받는 동안에는 대학을 다녀서는 안 된다는 남편의 반대로 대학을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설사 의정비로 학비를 충당하지 않더라도 시민의 세금으로 의원 개인의 공부를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절대 반대했다는 것. 그래서 선거에 낙선하자 말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위덕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석사과정에 들어가 4학기를 마치고 지금은 논문작성만 남겨놓고 있다. 역시 사회복지 전공이다. 석사논문은 노인일자리 연구. 역시 복지분야를 선택했다.남다른 신념, 열정의 소유자지난 해 경주역 앞 촛불시위도 앞장서서 이끌었다. 지금도 ‘민들레봉사단’과 ‘경주여성노동자회’, ‘행복한 경주만들기’ 등 여러 사회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더 좋은 세상 만들기, 더 좋은 경주만들기 운동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EM(친환경) 운동에도 열심이다. 황성 5일장에서 동호인들과 함께 만든 비누 등 친환경 제품 홍보와 판매도 하고 있다.  무슨 일에나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신념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성격이다. 똑똑하다. 여성스럽기도 하다. 딸은 현재 대학 졸업반. 코리아헤럴드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기자생활을 하고 있고, 아들은 해병대를 전역하고 복학 준비 중이다. 자녀들이 대학 다닐 때 한달에 10만원 이상 용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충분한 용돈을 줄만한 형편도 안 되었지만 사회경험과 함께 자립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기도 했지만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한 자식들에게 대견하고 미안하다는 두 아이의 어머니다. 매우 검소하다. 시댁은 경주시 서면. 시어른의 며느리 사랑과 자랑이 대단하다고 전해진다. 아래로 남동생 둘이 있었는데 이들 동생을 휘어잡으며 살아 온 탓인지 남성적인 성격이 있고 리드십이 있는 편이라는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호적에는 67년생으로 올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66년생이란다. 취미는 등산. 김영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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