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편집위원 김 영 길 황룡사, ‘그것이 알고 싶다’어찌어찌하여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는 선덕여왕에게 불법(不法)의 힘을 빌어 주변국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황룡사 9층탑 건립을 건의한다. 645년에 완공된 탑은 수차례의 벼락과 화재에 따라 중수를 거듭하다가 1238년 몽골에 의해 완전히 불타버렸다. 지금부터 1,180년 전의 일이다. 몇 가지를 생각해보자. 먼저 불법으로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거나 물리친다는 게 도대체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결론이라고 딱히 말할 게재도 아니다. 100% 불가능한 일이다. 부처는 절대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부처는 연못에 빠진 돌이 떠올라 라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소용없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뭔가? 자장율사가 무지했거나 혹은 선덕여왕을 기만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선덕여왕이 자장율사를 이용했거나다. 추론이지만 자장율사는 자신의 권위, 혹은 불교의 기반을 다지려는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선덕여왕은 자장율사에게 온전히 속았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당시 여왕의 등극으로 어수선했던 왕권의 권위를 확립하고, 나아가 국론을 통일하거나 국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주변의 온갖 나라들이 신라를 침범하던 때였다. 주변국의 침략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각 층별로 새겨놓은 나라의 이름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침략의 빈도와 피해의 순서대로다. 1층은 왜국, 2층 중화(中華)에 이어 탁라(탐라의 다른 이름),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 순이다. 이 시기는 제주도에 있던 탐라국조차 신라를 업신여기고 침범할 정도로 국력이 형편없었다. 황룡사 탑의 건립으로 이들 나라들의 침략이 줄어들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탑은 1238년 몽골의 침략으로 완전히 불타버렸다. 주변국의 침략에 대해 나라의 지도자는 부국강병으로 맞서야지 탑을 세우고 장육존상과 대종을 만든다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거대한 부처상과 대종을 만드는 쇠와 구리로 창과 방패를 만들어야 되지 않는가? 그 당시 9층 목탑을 짓기 위해서는 온 나라의 국력을 모조리 쏟아 부었을 것이다. 아마도 통치력이 미치는 신라 전역의 굵은 나무는 모조리 베었을 것이다. 나무를 옮기고 다듬기 위해서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데에 국가의 온 역량을 소진했다가 나라와 백성이 비참한 꼴을 당한 것이다. 몽골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렸다. 자장율사의 무지인지 욕심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여하튼 나라와 백성은 형편없이 됐다. 황룡사가 호국사찰이라고? 취지는 맞을지라도 결과는 엉터리였다. 황룡사 때문에 신라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부국강병 대신 전혀 근거 없는 자장율사의 말을 듣고 황룡사를 세우는 데에 국력을 집중 투입한 결과다. 엄연한 사실이다. 황룡사가 불타기 얼마전 고려말 진각국사 혜심(慧諶)이 황룡사 탑에 올라 지은 <황룡사 탑에 올라(登黃龍塔)>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처참했던 당시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殘民破戶不堪觀(잔민파호불감관-피폐한 백성들 부서진 집, 차마 보지 못하겠네) 탑에 올라 내려보니 백성들은 움막이나 다름없는 집에서 살고 있었음을 시로 적고 있다. 당시 백성들의 처참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노정되어 있다. 그런데 1천 3백년이 지난 지금도 호국사찰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고 있으니 참으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이들 대부분은 황룡사로 한몫 잡으려는 사람이거나 기업이다. 황룡사를 우려먹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황룡사에 대한 학술 세미나 등 온갖 행사는 계속될 것이다. 복원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을 것이다. 이 말과 탈에는 돈이 들어간다. 모두 우리가 낸 세금이다. 황룡사는 당연히 슬픈 역사로 남아야 한다. 두고두고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지와 편견과 잘못된 정책결정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다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현 상태로 절터를 보존하면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이 불가능함을 잘 안다. 황룡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족(蛇足)이지만 정부와 경주시는 2034년까지 2,181억원을 들여 복원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역시 심사숙고해야 한다. 복원하면 유네스코 유산에서 제외된다. 로마의 콜롯세움을 보라. 보수는 해도 복원은 하지 않는다. 유네스코는 발굴은 하되 복원은 안 된다는 게 대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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