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리단길 담장 너머 원도심은 `공실의 늪`… 경계 허무는 연계 관광 절실지가 폭등·인구 44% 급감의 경고, `황리단길-원도심` 상생 거버넌스 절실“황리단길만 살면 경주가 사는가?”… 오버투어리즘의 해법 같이 고민해야
황남동의 황리단길은 지금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를 기점으로 외국인 관광객은 이전 대비 5배 이상 폭증했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는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의 장에서 불과 10분 거리인 원도심(중부, 황오, 노서, 성동 일대)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황리단길이 경주의 모든 자본과 관광객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되면서, 인근 상권은 오히려 공동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본지가 분석한 경주시청 통계 자료는 황리단길의 위기를 수치로 증명한다. 2016년 6,400여 명에 달했던 황남동 인구는 2026년 1월 기준 3,611명으로 무려 44.1%나 급감했다. 이는 전형적인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현상이다. 주거 지역이 급격히 관광지화되면서 소음, 쓰레기, 주차난을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고, 그 자리가 오직 외지인을 위한 상업 시설로 채워지며 정주 공동체가 붕괴된 것이다.이 과정에서 발생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둥지 내몰림)’은 더욱 뼈아프다. 최근 5년 사이 황리단길의 평당 지가는 35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20평 매장 기준 권리금은 8,500만 원, 월 임대료는 400만 원을 육박한다. 이처럼 치솟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로컬 소상공인들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 빈자리를 대형 자본과 국적 불명의 프랜차이즈들이 장악하며 경주만의 고즈넉한 정체성은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주민이 떠나고 상권만 남은 거리는 결국 생명력을 잃은 ‘박제된 테마파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더 심각한 것은 황리단길의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 관광)이 인근 원도심으로 전혀 전이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황리단길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0%대를 유지하며 ‘빈 방’이 없는 반면, 도보 10분 거리인 금리단길을 포함한 원도심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5.10%까지 치솟았다. 원도심 상가 4곳 중 1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원도심의 투자 수익률 역시 0.69%로, 시중 은행 이자보다 못한 수준을 보이며 도시재생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황리단길과 대릉원, 첨성대라는 삼각형 구도 안에만 갇혀 있다. 도보로 충분히 이동 가능한 거리에 중앙시장과 성동시장, 봉황대와 같은 훌륭한 역사 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잇는 연계 동선과 매력적인 콘텐츠 연결 고리가 부재한 탓에 원도심은 ‘단절된 섬’으로 남겨졌다.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황리단길에 얼마나 더 많은 관광객을 모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들을 원도심으로 흘려보낼 것인가"가 경주 관광의 사활을 결정지을 핵심 과제다.APEC 특수는 황리단길 소상공인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소상공인 중심의 `민·관 연계 거버넌스` 구축이다. 황남동 상인회와 원도심 상인협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황리단길 이용객에게 원도심 상가 할인권을 제공하거나 양 지역을 잇는 이색 도보 탐방 코스를 개발하는 등 자발적인 상생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인들 스스로가 ‘나 홀로 번영’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지자체 역시 `도로 정비` 수준의 하드웨어 행정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황리단길의 과포화된 인파를 자연스럽게 원도심으로 유도할 수 있는 ‘스마트 관광 실핏줄’을 설계해야 한다. 원도심 내 유휴 공간을 청년 창업가들에게 파격적으로 지원하여 황리단길과는 또 다른 매력의 `로컬 브랜딩`을 시도하고, 국가 문화유산과 상권을 잇는 광역 관광 벨트를 완성해야 한다. 즉 다시 말해 컨텐츠 개발이 절실하다.황리단길은 동부사적지라는 국가 문화유산을 병풍처럼 두른,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수한 지역이다. 이 특수성이 경주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황리단길의 `성벽`을 허물어야 한다. 황리단길이 경주의 유일한 성공 사례로 남는다면, 그 미래는 타 지역의 몰락한 상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APEC이라는 거대한 기회의 파도를 경주 전역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지자체의 정책적 혜안과 소상공인들의 대승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주민이 살고 상인이 웃으며, 관광객이 경주 전체를 거니는 `선순환 구조`만이 10년 주기설을 넘어 `지속 가능한 천년 고도 경주`를 만드는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