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총장 이대원) 의과대학(학장 정필현)이 지난 22일 경상북도와 ‘치매극복 선도대학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치매극복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2014년 7월 경주의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새롭게 문을 연 제7대 전반기 경주시의회는 지난 2년간 권영길 의장을 비롯한 20명의 경주시의회 의원은 시민의 대표기관이자 봉사자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민과의 약속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시민 생활과 밀접한 민생현장을 찾아가는 발로 뛰는 현장중심의 의정 활동을 펼쳐 나가며 실천하는 의회, 시민화합을 기반으로 한 소통의 열린의회를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하여 왔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24일 오후 1시 30분 충북 진천 성종사에서 열리는 ‘신라대종 주조기념 울림식’에 참석한다.
경북남부보훈지청(지청장 박창표)은 22일 오후 4시 3층 회의실에서 호국보훈의 달 '포상 전수식 및 충의장학금 수여식’을 가졌다.
국립 한국문학관경주유치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22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국립한국문학관 후보지 선정을 앞두고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사장 조석)은 22일 고리 원자력본부에서“전사 전기차 인수식”을 개최했다.
경주시는 금년도 4월 1일부터 관내 금연구역에 대한 본격적인 흡연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경주시 보건소는지난 20일부터 내달 21일까지 총 15회에 걸쳐 관내 어린이를 대상으로 서라벌문화회관과 초등학교 강당에서 흡연예방인형극 공연을 실시하고 있다.
경주시보건소는 지난 20일부터 내달 6일까지 보건소 보건교육장에서 동지역 주민 35명을 대상으로 걷기지도자 2기 양성교육을 실시한다.
경주시 안강읍의 대표 사회봉사단체인 (사)등대회(회장 김영규)는 지난 21일 안강중앙교회 에서 회원 30여명과 산대 4리 부녀회, 중앙교회 청년회․부녀회 30여명 등 총 60여명이 지역어르신 250여명을 모시고 경로위안잔치를 열었다.
경주시는 지난 20일 영상회의실에서 내달 15일부터 피서철을 맞아 관내 5개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해수욕장 운영협의회를 열고 안전대책 등 분야별 준비사항을 점검했다.
경주시는 22일 청소년수련관에서 2016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고 대진추첨의 시간을 가졌다.
경주시의회(의장 권영길)는 22일 오전 10시 경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지난 1일부터 22일간 일정으로 개최한 제214회 경주시의회 제1차 정례회가 제3차 본회의를 끝으로 마무리 했다.
경주상공회의소(회장 김은호)는 22일(수) 오전 11시 경주 힐튼호텔에서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최기동 청장을 초청하여 지역 기업인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지방고용노동청장 초청 기업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우선 경주시의 의지와 자신감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유치신청서를 내놓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생각이다. 거치대에 프랜카드 몇장 붙이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는 식으로 뒷짐만 지고 있다.
경찰에 오랜 세월 몸담은 뒤에도 국가의 명에 따라 총영사로, 공기업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고향에 머무른 시간이 적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주시민들은 저를 믿고 국회로 보내 주었습니다. 각골난망 가슴에 새겨야 할 고마운 일이지요. 다시한번 시민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장님, 민선 5기에 이어 6기 임기의 절반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시장님께서 경주시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시장님, 앞으로 경주는 살만한 도시입니까? 희망과 기대를 갖고 살아도 되겠습니까?
시는 활용방안에 대해 지난해부터 철도역사 및 폐철도부지 활용방안 기본구상 용역과 시민토론회 등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수렴하여 왔으며 이번 포럼을 통해 관계전문가, 시민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하여 오는 7월에 용역을 완료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관리계획(안) 19페이지에는 뻔뻔하게도 이 모든 책임을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에게 모두 돌리고 있다. 한수원은 중간저장시설에 대한 그 어떠한 권한도 없다. 또한, 원자력안전법과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사용후핵연료의 관리자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다. 그러나 이 두
정수기 선생은 1896년 4월 24일 경주에서 태어나 26세 되던 해인 1922년 8월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의열단 고문으로 있던 김창숙선생을 찾아가 무관학교 설립, 독립군 양성 등을 협의하고 1923년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활동을 했다. 하지만 독립을 채 보지 못하고 1927년에 체포되어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36년에 출옥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더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천정수기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