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동 유림지하차도 구조개선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6차선에서 4차선으로 축소안을 내놓고도 여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다. 상습 침수 지역을 해소하고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의 공공사업이 주민 반대에 부딪혀 중단된 채 4개월째 표류 중이다. 문제의 핵심은 도로인가 숲인가, 환경인가 생존인가에 대한 질문이다.e-편한아파트 주민들과 유림숲보존회는 해당 도로 공사가 유림숲을 훼손하고 주거 환경을 해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경주시가 주민 의견 수렴 절차 없이 공사를 밀어붙였다고 주장하며, 배기가스 유입과 소음 피해 등 건강권 침해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항공사진을 통해 본 이른바 `유림숲`은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나무 한 그루 없었던 허허벌판이었으며, 현재의 나무들 대부분이 외래종 메타세쿼이아로 조성된 인공 숲이라는 점에서 주민 주장의 진정성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진정으로 숲을 지키려 했다면 애초에 아파트도 짓지 말았어야 한다"는 반론은 그 자체로 주민 반발의 이기적 동기를 드러낸다. 도로 인근에 대형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편리함을 누려온 이들이 이제 와서 공공의 이익이 달린 도로 개선 사업을 반대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현재의 유림지하차도는 강변로와 시내권을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로, 황성동 주민 다수와 지역 정치권에서도 구조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경주시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6차선에서 4차선으로 축소하고 도로폭도 줄이는 변경안을 내놓았다. 이는 유림숲 훼손을 최소화하고 아파트와의 이격거리를 확보하려는 조치로, 도심 교통 기능과 환경 보존의 균형을 맞추려는 타협안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주민대책위는 해당 안을 즉각 수용하지 않고 여전히 추가 의견 수렴 과정을 예고한 상태다.
경주시로서는 이 사업을 더 이상 미룰 경우 반복되는 침수 문제 해결은커녕 예산 낭비와 행정 신뢰 저하라는 이중고를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현재 직선화 공사 구간에는 형산강 둔치를 활용한 우회도로 계획이 필요하다는 추가 부담도 생겼다. 이 모든 사정을 고려할 때, 도로 기능 저하와 공사 지연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타협안을 내놓은 경주시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소음, 미세먼지, 배기가스 등의 건강권 문제를 내세워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의 공공도로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을 전혀 차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직선화 공사를 통해 방음벽 설치, 도시바람길숲 조성 등의 부가적인 환경 개선책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해당 아파트 단지가 입주 당시 지역 환경 개선에 기여하거나, 주민 스스로 유림숲 보존을 위해 나무를 심거나 생태조성을 해온 흔적은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지역 내에서는 이들의 행동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식의 이기적 입장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유림지하차도 갈등은 단순한 도로공사를 넘어, 도시개발과 환경보존, 공익과 사익의 충돌이라는 사회적 시험대다. 공공 인프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보다 전체 시민의 삶의 질을 우선해야 한다. 그렇다고 환경 훼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상호 신뢰 속의 합의다.
경주시의 4차선 축소안이 완벽한 해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행정이 보여줄 수 있는 양보와 타협의 최대치에 가까운 시도다. 이제 공은 주민들의 몫이다. 감정의 프레임을 넘어 실질적 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을지, `숲`이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