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 이후 20년 동안 총 4조 7,927억원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대규모 사업들을 추진해 왔지만, 정작 시민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방폐장 건설(1조 8,532억원)을 비롯해 한수원 본사 경주 이전(2,530억원), 양성자가속기 구축(3,143억원) 등 굵직한 사업들이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약 7조원의 생산유발효과와 9만명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통계적 효과에 그칠 뿐, 지역사회에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2023년 대구대 김준우 교수진과 울산과학기술원 공동 연구진이 실시한 시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방폐장 관련 지원사업에 대해 ‘모른다’고 답한 시민이 23.8%, 사업 규모에 대해선 무려 85.4%가 ‘모른다’고 답했다. 완료된 사업조차도 절반 이상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홍보 부족 문제가 지적된다.   시민 인지도 조사에서는 ‘한수원 본사 이전’이 가장 높았고, 의외로 ‘월정교 복원’이 뒤를 이었다. 만족도 역시 월정교가 1위를 차지하며 문화재 복원에 대한 시민들의 긍정적 반응이 두드러졌다. 반면 사업의 필요성 항목에서는 ‘경주 생활쓰레기 소각장 설치’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그러나 고용 효과에 대한 실질적 체감은 크지 않다. 건설 중심의 단기 고용이 대부분이었고, 청년층 유입이나 정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9세 청년 임모 씨는 “경주는 문화·일자리가 부족해 결국 포항으로 이사했다”며 “소문난 잔치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관광 기반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도 기대에 못 미쳤다. 양성자가속기 배후단지, 경주컨벤션센터 등이 조성됐지만, 소상공인에게 돌아오는 효과는 미미했다.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관광객 회복도 더디며, 체류형 관광으로의 전환 역시 지지부진하다.   전문가들은 “기반시설 중심에서 벗어나 일자리, 문화, 교육이 균형 잡힌 질적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제는 외형을 넘어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며 “지속 가능한 도시 생태계 구축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20년 전의 결단은 경주의 도시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제는 ‘보여주기식 개발’이 아닌 ‘삶에 닿는 변화’가 요구된다. 막대한 예산이 시민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다음 20년은 또 다른 교훈만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이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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