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폐장 유치 20년. 총 4조 7,927억 원의 지원금이 도시에 투입됐다. 한수원 본사 이전, 양성자가속기 구축, 월정교 복원 등 굵직한 사업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관계기관은 생산유발효과 7조 원, 고용유발효과 9만 명이라는 통계를 내세운다. 그러나 시민의 삶은 왜 이토록 조용한가.정책의 실효성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 느끼는 변화에서 드러난다. 2023년 대구대·UNIST 조사에 따르면 경주시민 85.4%는 방폐장 지원사업의 규모조차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은 사업 완료 여부조차 ‘모른다’고 했다. 사업은 진행됐고 돈도 쓰였지만, 시민은 배제됐다.문제는 단순한 홍보 부족이 아니다. 시민의 참여 없이 만들어진 정책은 그 자체로 공허하다. 보여주기식 사업이 도시의 외형을 일시적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일상과 삶의 질을 바꿔놓지는 못했다.청년은 떠나고 고령화는 가속된다. ‘소문난 잔치’라는 말이 지역민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정책은 체감되지 않았다. 일자리 유발효과의 대부분은 단기 건설직에 한정됐고, 지역 청년에게 돌아간 몫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문화·교육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고, 복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부족했다.시민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사업이 ‘월정교 복원’이라는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거창한 계획보다, 시민 일상에 닿는 작고 구체적인 변화가 오히려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는 증거다.그동안 진행된 지원사업이 무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로가 넓어졌고, 기반 인프라는 분명 확충됐다. 그러나 ‘삶의 질’이라는 본질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실질적 변화가 없는 개발은 결국 ‘성과 없는 투자’로 귀결된다.이제 관계 기관과 사업 주체는 정직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정책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민 의견은 얼마나 반영되었는가. 지역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이 머무르고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건이다.청년이 떠나고 자영업자가 버티는 지역에 수천억 원의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도시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주체는 행정도 건물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다.경주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겉만 화려한 성장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보여주기식 개발’에서 ‘체감 가능한 변화’로, ‘외형의 성과’에서 ‘삶의 질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20년 전의 유치가 교훈 없이 끝난다면, 향후 어떤 정책도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시민과 함께 다시 질문해야 할 때다. 그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진짜 변화는 시민의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4.7조 원의 지원도 결국,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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