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낮 기온이 39도까지 치솟아 이어지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당 100㎜가 넘는 장대비가 쏟아지며 농경지는 물바다가 됐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휩쓸면서 상추‧오이 같은 채소가 녹아내리고, 돼지·닭 폐사 사례가 속출했다. 결국 재래시장 채소·육류 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시민들 체감 물가는 폭염만큼이나 뜨겁다. 기후 쇼크가 가격 쇼크로 직결되는 ‘기후플레이션’이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 뼈아프게 확인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이상 기상이 반복·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상청 ‘2024 이상기후 보고서’가 지적했듯, 지난해는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 극한 기후가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금(金)자’가 붙은 채소·과일이 속출한다면, 14조원 규모 민생회복 소비쿠폰도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후플레이션을 기후재난의 한 축으로 보고 상시 관리 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취약계층의 생계는 물론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첫째, 경주시는 기후위기 대응을 전담하는 농식품 수급 컨트롤타워를 서둘러야 한다. 농업기술센터, 농협, 농산물도매시장, 전통시장 상인회, 그리고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상황판’을 상시 가동해 작황·가격 정보를 초 단위로 공유하고, 수급 차질이 생기면 곧바로 비축 물량 방출·긴급 물류 지원에 나서는 체계가 필요하다.둘째, 재해 대응을 넘어 ‘기후 탄력적 농업’으로의 구조 전환이 시급하다. 시설 원예단지에는 냉방·차광과 물 절감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스마트팜 설비를 단계적으로 보급하고, 폭우 침수 위험이 큰 평야지대엔 고저차를 고려한 배수 펌프와 집수로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버려지는 축분·음식물 폐기물을 활용한 바이오가스 플랜트 같은 재생에너지 시설을 농촌 거점마다 구축하면, 전력요금 상승 부담도 완충할 수 있다.
셋째, 소비자 보호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물가 급등 품목이 발생하면 지역사랑상품권 추가 캐시백, 전통시장 모바일 스탬프 적립제 등 직접지원과 함께, 학교·노인복지시설 급식 물량을 우선 구매해 가격 급등세를 누그러뜨리는 ‘공공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또한 가격 변동 정보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사재기·매점매석을 원천 차단하고, ‘착한 가격’ 매장에는 지방세 감면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현실적 대안이다.
넷째, 농어업인 피해 복구 예산을 ‘사후 지원’에서 ‘상시 예비비’로 전환하고 집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 피해 규모 산정과 보조금 신청에만 수 주가 걸리면 생산자는 다음 파종 시기를 놓친다. 현행 행정체계를 디지털화해 피해 등록과 보상이 일주일 내 처리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야외 활동 자제’ 같은 통보식 경보에 머무르지 말고 시민 안전 매뉴얼을 생활밀착형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이동식 그늘막·무더위 쉼터 확대, 냉방취약 가구 전기요금 할인, 폭염 대응 약자 돌봄 서비스 등 생활안전망도 기후플레이션 대응의 필수 인프라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비용은 피할 수 없는 미래세를 앞당겨 지불하는 일이다. 그러나 대비가 늦을수록 물가 충격, 생계 파탄, 지역경제 침체라는 ‘복합 재난’의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폭염·폭우 기후플레이션’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경주가 한 발 앞선 통합 대응 모델을 구축해 전국에 선례를 남기길 기대한다. 그것이 시민의 밥상을 지키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