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린 강당 무대 위로 박수가 터졌다. 지난 9일 일본 와카야마현 치벤학원와카야마고등학교 대강당. 경주고등학교(교장 박진홍) 선수단이 3박 4일 일정 중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낯선 그라운드가 아니라,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된 환영의 인사였다.
경주고 야구부는 지난 9월 8일부터 11일까지 일본 와카야마현 소재 치벤학원와카야마고등학교(智辯学園和歌山高等学校)를 방문해 한·일 청소년 스포츠 국제교류를 진행했다. 야구부 선수와 코치진, 학교 관계자 등 총 43명이 참가한 이번 교류는 경주 출신 김석기 국회의원의 제안으로 성사됐으며, 경주시의 예산 지원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반세기를 넘은 인연>경주고와 치벤와카야마고의 만남은 김석기 의원과 학교법인 치벤학원 후지타 키요시 이사장의 인연에서 출발했다. 치벤학원 계열 학교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경주를 수학여행지로 찾아왔고, 치벤와카야마고 역시 1979년부터 해마다 경주를 방문해 온 만큼 양측이 쌓아온 인연은 반세기를 넘는다. 2017년부터는 치벤학원 산하 3개 고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경주 연수 프로그램도 이어지고 있다.
치벤와카야마고는 일본 고교야구 최고 권위 대회인 고시엔에서 여름 4회, 봄 1회 우승한 명문으로, 올해 열린 제108회 여름 고시엔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두 학교 감독이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도 이 같은 오랜 인연이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말은 몰라도 하이파이브로 통했다>이번 교류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실내 훈련장에서 펼쳐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양국 선수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야구`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금세 가까워졌다. 몸짓과 표정, 짧은 단어를 총동원해 서로에게 훈련 방법을 설명하고, 좋은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국적 구분 없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파이팅”과 “간바레(힘내라)”를 함께 외쳤다.
이번 교류는 처음부터 승패를 다투는 경기가 아닌, 학생 간 우호와 문화 이해에 중점을 두고 기획됐다. 양교 야구부는 방문의 목적상 별도의 경기 없이 이틀간 함께 몸을 풀고 기본기를 나누는 교류 활동을 진행했다.
이번 방문에서 통역을 맡아 활동을 주도한 박덕환 교사(일본어 담당)는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학생들이 어떻게든 소통하려 애쓰고, 서로를 응원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포츠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다”며 “훈련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오랜 친구처럼 어울리는 학생들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주고 야구부 임원수 감독은 “이번 교류를 통해 두 학교 학생들이 서로의 야구 문화를 이해하고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치벤와카야마고 코지마 노부유키 교장도 “학생들이 온라인이 아닌 대면 만남을 통해 서로의 문화와 생활을 알아가는 값진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양교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라운드를 넘어, 교실로 이어지는 우정>경주고 선수단은 훈련 외에도 수업과 동아리 활동 참관, 학생 교류회 등에 참여했다. 고시엔 야구장 견학과 고베·오사카 지역의 역사·문화 탐방도 함께 이뤄졌으며, 마지막 날에는 양교 학생과 관계자가 기념품을 주고받으며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양교는 이번 교류를 일회성 행사로 남기지 않을 방침이다. 치벤학원 산하 3개 고교 학생들은 2027년 5월 경주 연수를 통해 경주고를 방문할 예정이며, 이를 계기로 야구부 중심의 교류가 일반 학생들의 교육·문화 교류로 확대될 전망이다.
경주고는 이번 교류가 한·일 청소년 간 우호 증진은 물론, 학생들의 국제적 시야를 넓히고 문화 이해와 존중 의식을 기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교와 지역 국회의원, 경주시가 함께 이끌어낸 이번 교류는 민관협력형 교육 모델이자 국제교류의 모범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