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시대가 본격화된 이후, 지자체 간의 `상생`과 `동맹`은 선거철이나 연초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지난 2016년 출범한 `해오름동맹(경주·울산·포항)` 역시 그 시작은 창대했다. 인구 200만 명에 경제 규모 95조 원에 달하는 메가시티급 연합체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시민들이 체감하는 생활 밀착형 성과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거창한 선언문과 단체장들의 환한 기념사진 뒤에는 늘 제자리걸음인 해오름 동맹이라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았다.이런 가운데 최근 주낙영 경주시장과 김상욱 울산시장이 울산에서 만나 도출해 낸 합의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무엇보다 행정구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 수십 년간 표류하던 동경주 지역의 최대 숙원, ‘도시가스 배관망 연결’ 문제를 풀기 위해 두 도시가 실질적인 맞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그렇다.경주는 천년 고도라는 찬란한 문화유산 타이틀 뒤에, 외동읍과 같은 굵직한 산업단지와 동경주 일대의 국가 에너지 시설을 품고 있는 복합 도시다. 특히 동경주 지역은 오랜 기간 국가 에너지 정책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오면서도, 정작 주민들 자신은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에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 막대한 인프라 구축 비용과 경제성 부족은 사업자나 행정 관청 입장에서 늘 내세우기 좋은 명분이었다.실제로 경주시 관내 배관망을 고집할 경우, 외동읍에서 양남면까지 험준한 하천과 암반 지형 20km를 뚫어야 한다. 무려 14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혈세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비효율의 극치다. 반면, 지척에 있는 울산 북구에서 배관을 끌어오면 거리는 7km로 대폭 줄어들고, 5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단숨에 절감할 수 있다. 삼척동자도 어느 쪽이 옳은지 알 만한 합리적인 대안이다.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중앙의 낡은 규제와 칸막이 행정이었다. 현행 ‘도시가스사업법’은 일반도시가스사업자의 공급 권역을 지자체 행정구역 단위로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울산의 가스를 7km 곁에 두고도 20km를 돌아가야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만들어낸 촌극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단체장은 낡은 규제에 순응해 예산을 낭비하거나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중앙정부에 공동으로 제도 개선을 건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인접 지자체 간 공익상 필요할 경우 공급권역 조정을 명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신설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규제 혁파를 통해 예산을 아끼고 지역의 자생력을 높이려는 보수적 실용주의 행정의 표본이자, 전형적인 `적극 행정`이다.아울러 이번 회동에서는 교통망 확충이라는 또 다른 민생 현안도 밀도 있게 다루어졌다. 상습 정체로 몸살을 앓는 외동교차로~울산시계 간 국도 7호선 확장이나 농소~외동 간 국도 건설, 울산 시내버스의 감포 연장 운행 등은 경주 외동과 울산 북구를 하나의 동일 생활권으로 묶어주는 핵심 동맥이다. 이 역시 행정 경계를 넘나들며 출퇴근하고 생활하는 지역 주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실체적인 정책들이다.민심은 그동안 겉치레에 치중한 보여주기식 행정과 전시성 탁상행정을 숱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시민의 혈세를 아끼고, 변두리 소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법령 개정까지 불사하며 공조하는 이번 결단은 마땅히 박수받아야 한다. 행정은 결국 팍팍한 시민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중앙정부의 법 개정을 이끌어내고, 민간 사업자인 도시가스 회사들과의 얽힌 실무 협상을 타결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있다.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숙원을 해결하는 것이 해오름동맹의 본래 취지"라는 주낙영 시장의 다짐이 실효성을 증명해 내야 할 시간이다. 단체장들의 만남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양남면 주민들의 주방에 실제로 가스 불이 켜지는 그날까지 끈질긴 행정력과 정치력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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